[이글리첼] 꽃다발

2016. 6. 25. 23:02사이퍼즈/이글리첼

눈을 떠 보니 벌써 점심때다. 어제 곡을 쓰다가 늦게 잤더니 그런가보다. 문득 탁자에 시선이 닿는다. 깨끗히 정리된 탁자 위에는 반짝이는 종이에 포장된 보랏빛 안개꽃 다발이 놓여있다. 이틀 전 불쑥 찾아와 쭈뼛거리며 꽃을 쥐어주다시피 하곤 무어라 말을 하더니 허겁지겁 떠나가던 이글. 귀까지 새빨개진 얼굴로 온갖 폼은 왜 잡은거람. 리첼은 속으로 웃음을 삼킨다. 하여튼 그 녀석도 그런 면이 있다니까. 참, 그나저나 이 꽃은 어떡하지?
"캐럴, 캐럴! 뭐야. 얘 어디 갔어?"
방부터 거실까지 찾아봐도 캐럴은 보이지 않는다.
꽃병이라도 사러 가려고 했는데...
"아휴. 하필 이럴 때만 없다니까."
한숨을 쉬고 있자니 현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리첼 언니?"
현관에 선 캐럴은 짐이 한가득이다.
"뭐야. 너 어디 갔었어? 근데 멜빈이랑 언니는 왜 같이 갔어?"
"난 나가기 싫었어. 근데 드라이버를 잃어버려서..."
"나도 나가기 싫었는데, 캐럴이 나가자고 해서..."
"아아, 그래. 둘이 자의로 나갔을리가 없지."
리첼은 절레절레 손을 내젓는다. 하여튼 이 귀차니스트들 같으니.
"됐고, 뭐 사온지나 좀 보자. 또 쓸데없는거 사 왔기만 해 봐."
비닐 봉투를 식탁 위에 놓고 뒤적인다. 드라이버, 첼시 콜라, 캣닢, 연필, 오미자 차... 어, 캣닙?
"캣닙은 뭐야. 왜 사왔어? 호라이즌엔 고양이도 없는데!"
"그, 그건 캐럴이 샀어."
멜빈이 쭈뼛거리며 캐럴을 가리킨다.
"그게... 저번에 보니까 요 앞에 고양이가 한 마리 돌아다니길래..."
어휴. 리첼은 가볍게 한숨을 쉰다. 그 고양이가 좀 귀엽긴 했지. 이건 그냥 넘어가야지 싶어 다시 봉지에 손을 넣는데, 어라? 이게 뭐지? 꺼내보니 길쭉한 흰 병이다. 병 입구에 낮은 음자리표가 그려져 있다. 두 손가락으로 집어 들어올리며 세 사람을 째려보자 리사가 바닥을 보며 작게 말한다.
" 꽃병...이야. 예,예뻐서 샀어."
"내가 못살아. 이건 또 어쩌려고..."
잠시만. 쓸 데가 있는데?
"언니. 이거 내가 쓴다?"
리첼은 대답을 듣기도 전에 냉큼 달려가 물을 채워 꽃을 꽂는다. 꽃이 물기를 머금어 좀 더 싱그러워 보인다.
"흐응~ 판타스틱!"
당분간은 꽃이 시들지 않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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