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리첼] 겨울 밤

2016. 6. 20. 02:49사이퍼즈/이글리첼

2016.02.02 오전 01:56

"그럼 나중에 또 봐, 이글!"
"그래그래. 조심히 들어가라, 꼬맹아!"
"꼬맹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피식, 이글은 웃으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손을 흔들고 돌아서는 리첼을 보며 이글도 크게 손을 흔들더니 그제서야 연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라, 이글 형!"
연합의 펍에서 제일 먼저 마주친 사람은 컵을 닦고 있던 토마스였다.
"오늘도 리첼 씨 바래다드리고 오신거에요?"
"야, 야. 좋아하는 사람 생겨 봐. 너라도 이럴 걸."
이글은 씨익 웃으며 찬장을 뒤지더니 맥주잔을 꺼낸다.
"그야 당연히 그렇겠죠. 근데 잔은 왜 꺼내세요?"
토마스의 물음에도 이글은 묵묵부답으로 맥주병을 따더니 잔에 콸콸 들이붓는다.
"마시려고."
"그걸 다요?"
"엉."
"리첼씨랑 무슨 일 있던거에요?"
"내 얘기 좀 들어봐. 토마스."
목소리를 낮추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하는 이글을 보며 심상치 않은 일임을 짐작한 토마스는 맞은 편에 앉아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했다.
"내가 오늘 점심에 리첼을 만났는데 말이야."
"네."
"얘가 글쎄 이 추운 날씨에 얇은 스타킹에 반바지 차림으로 나온거야."
응? 뭔가 이상한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뭔가 있었겠지. 그 이글 형이 저런 표정인걸.
"아, 네. 그래서요?"
"그래서요는 뭐가 그래서요야? 왜 그렇게 춥게 입었냐니까 말을 빙빙 돌리기만 하고 대답을 안 하는거야. 목도리라도 하지 그랬냐고 했더니 코트 입었으니까 괜찮대. 추워서 코가 빨개진게 딱 보이는데 그게 말이 돼? 그래서 내가 하고 온 목도리를 풀어서 감아줬더니 막 눈도 못마주치고 눈 쌓인 바닥만 쳐다보면서 엄청 조그맣게 말하는거야. 고마워, 라고. 아니,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귀여울수가 있냐!"
울컥, 토마스는 왠지 조금 짜증이 났다. 이글은 토마스는 안중에도 없는 듯 맥주를 꿀꺽꿀꺽 마시더니 잔을 탁 내려놓는다.
"아 참. 그걸 말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아무튼 그 다음에 밥 먹고 악세사리 가판대를 구경하는데 리첼이 계속 어떤 머리핀에서 눈을 못 떼는거야. 자꾸 집었다 놨다 집었다 놨다 하길래 사줄까? 했더니 됐대. 근데 다른 가게들을 구경하러 가서는 계속 표정이 안 좋아. 그래서 음료수 사온다고 하고 그 머리핀을 같이 사서 리첼한테 줬거든? 이거 좀 부담스러웠을까? 아니겠지? 갖고싶었던 거 맞겠지? 아닌데 괜히 준 거 아니지? 하아, 바래다주고 여기로 오면서 내내 그게 신경쓰여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니까!"
재잘거리는 이글의 말을 듣다 못한 토마스는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났다.
"지금 그것 때문에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술을 마신거에요? 저는 형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거든요! 리첼 씨랑 만나고 오시면 맨날 이러시잖아요!"
이글이 이러는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리첼과의 데이트 후에는 매번 이랬다. 토마스가 없으면 루이스에게, 루이스가 없으면 엘리를 붙잡고서라도 자랑인지 고민인지 한탄인지 모를 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다.
"연합에 여자 좀 만나봤을 것 같은 사람이 너, 나, 루이스 이렇게 세 명 뿐인데 루이스는 이 시간에 맨날 없잖냐."
"루이스 선배 말고 엘리나 피터한테도 그러시면서 무슨....! 그리고 저 여자 별로 못만나봤거든요!"
"뭐, 진짜?"
놀라서 땅콩까지 떨어뜨린 이글의 표정에 토마스는 이유 모를 패배감을 느꼈다.
'내가 진짜, 서러워서라도 여자친구 만들고 만다...!'
토마스에게는 왠지 더 추운 겨울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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